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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골목 숨겨진 보석, 2만원 이모카세 ‘해바라기’를 만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예측 가능한 것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가끔, 아니 어쩌면 매일 밤 정해진 각본 없는 날것의 무언가에 목말라 합니다. 오늘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술자리, 예측 불가능한 내일 같은 안주. 그런 간절한 기대를 품고 저는 창동의 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음속 지도에 백반 맛집으로 점 찍어 두었던 ‘해바라기’라는 이름, 그곳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하는 술집으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메뉴판은 무의미! 이모카세의 진수, ‘해바라기’의 특별한 주문 방식

창동 골목 어귀에 자리한 ‘해바라기’는 밥집의 순박한 얼굴 대신 묵직한 내공의 술집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이곳의 메뉴판은 독특합니다. 애써 고민할 필요도 없이, 13,000원, 20,000원, 35,000원, 50,000원 네 가지 숫자가 전부입니다. 이는 단순한 가격표가 아니라, 오늘 밤의 여정을 어떤 깊이로 떠날 것인지를 묻는 네 개의 문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집의 내공을 가늠하기 위해 1인 2만원의 ‘이모카세’를 선택했고, 우리의 주문은 사장님의 손맛에 모든 것을 위탁하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아늑한 카운터석에 앉아 주인장의 숨결과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에 집중하며, 옆 사람과 어깨를 살짝 부딪히는 정겨운 거리가 오늘 밤의 술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줄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미식의 서막: 기본 안주부터 전복, 새우찜까지

자리에 앉자마자 이모님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기본 안주 5종을 내어주셨습니다. 짭짤한 장조림, 풍미 가득한 나물, 아삭한 샐러드까지. 재료 본연의 맛을 존중하는 손길에서 이모님의 따뜻한 환영 인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네 이네 가지 마세파편이 혀에 닿는 순간, 앞으로 나올 모든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모카세의 첫 페이지는 서늘한 기품의 오독오독한 전복회였습니다. 평소 차가운 전복회를 즐기지 않던 저였지만, 펼쳐질 미지의 만찬에 대한 이모님의 첫 번째 질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곧이어 나온 두 번째 접시, 가을의 정기를 품은 새우찜에서는 이 집의 진짜 저력이 드러났습니다. 녹진한 대가리를 빨아들이는 순간 서해 가을 바다가 통째로 입안에서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감칠맛은 전복회가 던졌던 서늘한 물음표를 뜨거운 느낌표로 바꿔 놓았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시간의 맛이 담긴 수육과 김치, 그리고 따뜻한 전

세 번째 접시가 등장하기 전, 주방에서 들려오는 자신감 넘치는 칼질 소리는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마침내 우리 앞에 놓인 수육 한 접시는 이 집의 뚝심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잡내 하나 없이 윤기 흐르는 지방과 촉촉한 살코기가 완벽한 비율로 붙어 있었고, 묵직하고 깊은 풍미가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그 옆에 수줍게 곁들여진 김치였습니다. 어린 시절 외갓집 마당의 땅속 김치처럼, 시간과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깊고 알싸한 발효의 향이 느껴졌습니다.

잘 삶아진 수육 한 점 위에 시간의 맛이 담긴 김치 한 조각을 올려 입안으로 가져가는 순간, 부드러운 고소함과 김치의 청량한 산미가 어우러지며 늦게함을 지워버렸습니다. 이것은 잊고 지냈던 기억이자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추억이었습니다.

감동의 K 펀치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릴 무렵, 주방에서 들려오는 지글거리는 소리는 다시금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명절의 기억을 강제로 소환하는 알록달록한 꼬치전과 향긋한 깻잎전이었습니다. 갓 부쳐낸 전의 뜨거운 생명력은 어린 시절 따뜻한 아랫목처럼 마음의 군불을 지펴주는 위안을 선사했습니다.

화끈한 반전의 묘미: 매콤달콤 낙지볶음과 개운한 마무리

따스한 전의 추억에 잠시 노곤해질 무렵, 이모님은 전혀 다른 결의 접시를 내어왔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강렬한 붉은 빛의 낙지볶음은 잔잔해지려는 술자리의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이는 화끈한 도화선이었습니다. 오동통한 낙지와 아삭한 채소, 그리고 잘 숙성된 고추장의 깊고 칼칼한 매운맛은 쫄깃한 식감과 어우러져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 잔을 채우시오”라는 이모님의 다정한 독려처럼 느껴졌습니다.

흰쌀밥을 부르는 마성의 양념이었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위장은 그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쉬움마저도 다음 방문을 기약하게 만드는 이모님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이곳은 안주의 가짓수만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라, 술꾼의 다음 잔과 술자리의 흐름, 그리고 원초적인 식탐까지 완벽하게 꿰뚫는 진정한 고수의 무대였습니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뜨끈하게 속을 달래주는 깊고 시원한 소고기 묵국으로 길었던 대장정의 막이 내렸습니다. ‘해바라기’는 비싼 술이나 화려한 안주가 아닌, 이모님의 따뜻한 손맛과 정성,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이 최고의 술맛을 완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창동 해바라기 총평 및 위치

위치: 서울 창동의 한 골목에 숨어 있습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곳이며, 정확한 주소는 방문 전 검색을 추천합니다.

일반적인 평가: ‘해바라기’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공간을 넘어,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손맛과 예측 불가능한 미식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보석 같은 술집입니다. 2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선한 해산물부터 육류, 전, 볶음, 탕까지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잡은 곳입니다. 정겹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진정한 술맛과 따뜻한 위안을 찾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